새해

새해 기념 포스팅

1. 지난해, 2011년이 가기 전에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일을 못 했다. ㅜㅜㅜㅜ 왜 새해 포스팅이 자기 반성으로 시작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머리를 하고 옷을 사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귀찮고 날이 넘 춥다고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어느새 2012년... 저기 나 당장 내일부터 입을 옷이 없는데 어떡하지?ㅜㅜㅜㅜ 담주안에 머리는 꼭 하고 싶은데 할 일이 좀 많아. 흑흑흑흑

올해는 오늘일을 내일로 미루는 나쁜 습관, 약간이라도 고치겠습니다. ㅜㅜㅜㅜㅜ



2. 지난해 목표 중 성공했던 것 중 하나는 살빼기였다. (원래 목표는 다이어트였지만 다이어트는 실패했다. ㅡㅡ) 지난해초 독감에 걸려 살이 좀 빠진 뒤 계속 그 몸무게를 유지했었는데 한 달 남기고 원상복귀가 됐다. 장난해?????? 지금부터라도 빼야 하는데 문제는 이번주부터 구정 때까지 계속 열심히 처먹을 일들이 줄을 서 있다. 어쩌라고;;;;;;

올해는 꼭 운동도 하고 식단도 건강하게 유지해서 제대로 살을 빼겠습니다. ㅜㅜㅜㅜㅜㅜㅜ



3. 갑자기 며칠 전부터 20대 초반의 고민이 되살아났다. 20대 때의 내 가장 큰 고민은 인간관계였다. 간단히 말해서 "왜 난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지?" 왜 그런지야 알지. 예쁘길 하나 똑똑하길 하나 재주가 많길 하나 성격이 좋길 하나. 하지만 나를 어여삐 여겨 놀아주는 사람들이 간간히 있기에, 또한 인기없는 걸 뭐 어쩌겠어라는 생각으로 그 고민을 제법 오래 잊고 살았는데 갑자기 되살아났다. 내가 친구가 제법 있다고 생각한 게 착각 아닐까? 날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날 좋게 생각해준다는 게 사실은 모두 내 오해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들이 갑자기 주루룩.... 하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좀 더 나은 인간이 되도록 노력은 하되 신경은 안 쓰고 살 생각이다.

지난해 한 상갓집에 갔을 때 일이다. 나하고는 학번 차이가 좀 있는, 그닥 친하지 않은 선배들이 먼저 앉아 있었다. 얌전히 자리에 앉아 그들이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뭐 예쁘다고 먼저 말을 걸어주겠어? 특히 우리나라 선후배 통념상 후배가 먼저 말을 거는 게 예의 아냐? 그래서 먼저 고개를 디밀고 말을 걸었더니, 다행히 선배들이 받아줘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얘기를 나눴다.

여름에는 예전 직장 동료들에게 만나자고 문자를 보냈다. 이 멤버에게 얼굴 보자고 내가 제안한 것은 이번이 처음. 두 명의 멤버는 선뜻 만나자고 답문을 보냈고, 만난 자리에서는 "네가 먼저 보자고 해서 무슨 일 있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 네가 연락한 것은 처음이라서 바쁘지만 무리해서 나왔다"라고 말해줘, 고마우면서도 민망했다ㅡㅡ;;;;;;

예, 그렇습니다. 제가 먼저 말걸거나 다가가지 않는 건 공주병에 걸려서가 아니라 하녀병이어섭니다. 베르사이유 장미에서도 나오지 않습니까? 듀바리 부인이 마리 앙트와네트에게 먼저 말 걸던가요? 분해서 부들부들 떨면서도 말 걸어줄 때까지 기다리잖아요.

나는 예전부터,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먼저 다가섰다가 무시당할게 싫어서, 나같은 애가 말걸면 그 사람이 싫어할까봐 상대방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딱히 매력적이지도 않고 좋아할 일도 없는 인간한테 먼저 다가가 손내밀어줄 사람은 없다.

그래서

올해는 주제를 알고(응?) 먼저 손 내미는 법을 익히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봤자 낯선 사람을 만나는 걸 그닥 좋아하지 않고 집안에 처박혀 있는 걸 최고의 호사로 아는 성격 땜시 지금과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 같습니다만 기본적인 태도는 바꾸려고요.



4. 올해는 두 개의 선거가 있다. 총선 때 집에 사람들을 불러 모아 낮부터 술판을 벌이며 개표 방송을 보려고 했으나 젠장, 날짜를 세어보니 하필 그날 출근하는 날이야....ㅜㅜㅜㅜㅜㅜ .... 그것도 저녁 5시쯤 출근해서 밤 12시에 퇴근해. 그 다음날은 새벽같이 출근해야 해. 도저히 술 마실 타이밍을 잡을 수가 없어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왜 하고많은 날 중 하필 그 날....ㅜㅜㅜㅜㅜㅜ 그래서 술판 계획은 깨끗이 접었다. 혹여나 일정이 바뀐다면 열겠지만 내 팔자에 그런 기적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이건 내 결심과는 별 상관없지만, 새해에는 한나라당의 몰락, 또는 몰락의 기미를 꼭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으로 양분되었던 지금까지의 정치현실과는 다른 새로운 희망도요. 한 표를 행사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하겠습니다요.


5. 올해는 쿨한 척, 객관적인 척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망가지는 걸 무서워하지 않는 법을 배웠으면 한다.



6. 큰언니가 무서운 얘기를 해 줬다. "마음은 아직 젊은데 몸만 늙는다. 그래서 아직도 자기가 젊은 줄 알고 그래서 주책이 되는 거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주마등처럼 내 머릿속을 스쳐가는 기억들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난 내가 젊은 줄 알고 20대 후배들과 어울리면서 걔네와 별 차이 없는 것 마냥 굴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주책이었던 거야.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올해는 내가 늙었다는 걸 인정하고 곱게 늙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주진우 기자도 아닌데 부끄럽네요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0. 새 일을 시작했습니다.

1. 2008년 이후 세상 풍파를 좀 겪다보니, 안정적인 생활을 꿈꾸게 된 지 어언 3년. 드뎌 나름대로 안정적일 것이라 기대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게 됐지만 내가 온 이상 이곳도 알 수 없어;;;; 당장 첫 출근이었던 오늘부터 갑작스런 김정일 사망 소식으로 아수라장이 된 사무실 풍경을 바라봐야 했긔;;;;; 그 어떤 평화로운 곳도 내가 가면 풍지박산 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야 말겠다는 야욕을 품고 일단 딴짓을 하고 있습니다. 내 팔자 왜 이래;;;;;;;

2. 지난 9월부터 하고 있는 일이 있는데 기냥 널럴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 투잡이 가능하긴 하지만 문제는 이번주가 좀 바쁜 주. 그런데 나는 새 일을 시작해서 적응하느라 좀 바쁘고 정신없을 것 같고 감기도 살짝 온 것 같고 나름 빡센 일주일이 예상되고 있다. 쓰다보니 정말 희망차지 않은데??????

3. 뜨내기 인생같은 프리랜서라서 그럴까, 출근해서 일을 손에 잡기 직전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당장이라도 전화가 와서 "미안하지만 내부 사정이 복잡하게 꼬였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그때 함께 일해효"라고 말할 것만 같다. 지난해 비슷한 일을 몇 번 겪고 나서는 더 심해졌다. 오늘도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면서 오지말라는 전화가 오면 어쩌나 마음을 졸이며 출근했다.

4. 일단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구나. 어쨌거나 성실히 해 봅시다요. 창피하지는 않게. 그런데 사무실 넘 춥다...발이 얼어....;;;;;;

탈당

어렴풋이 느끼고만 있던, 스스로에게도 설명하기 힘들었던 그 거부감의 이유 중 하나를 알 것 같다.

박원순, 안철수 및 개혁 진영에 대해서, 진짜 좌파가 아니라든가 그래서 한계가 있다든가 그래서 그들이 안고 있을 한계에 대해 비판을 한다든가 그런 시각은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짜 좌파"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들을 부정해도 되는 건가? 도대체 그놈의 "진짜 좌파"가 뭐길래?

나는 안철수나 박원순에 대해 아는 것이 그닥 많지 않지만, 둘 다 성실하고 양심적으로, 자신의 신념을 지키면서, 타인을 배려하고 이해하고 함께 도우며 살려고 애써온 사람들이라는, 아주 피상적인 이미지는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이들의 삶이, 단지 "진짜 좌파"가 아니라는 이유로, "중도 좌파"라는 이유로, "자유주의자"라는 이유로 부정당하는 것이 정당한가? "진짜 좌파"가 그렇게 대단한가? 아무나 다 까도 되나? "진짜 좌파"가 아니면 존중받을 수 없나?

나는 어차피 좌파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고 그냥 어정쩡한 얼치기일 뿐이고, 그래서 좌파가 아니어도 자유주의자여도 개혁주의자여도 진정성(그놈의 문제가 됐던 단어 진정성)만 있다면 괜찮은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상대방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나는 연대가 좋고, 하지만 그들은 별로 그런 게 아닌 모양이고.

"극좌"를 지향하는 정당이 하나쯤 있는 건 바람직하다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극좌"만 인정하는 독불장군들까지 바람직하다 생각하진 않고,


그래서 탈당했다.
그리고 조금 씁쓸하다.


ps. 결국 한미fta가 통과됐다. 너무 당황스럽고 어이가 없어서 화도 안 났다. 혹시 이런 심리를 노렸나;;;;;; 이걸 폐기하려면 내년 총선에서 2/3가 반한나라당이어야 한다는데 가능하려나;;;;; 민주당에 있는 볍신들도 피해가야 하고.... 휴....... 날이 많이 춥다.



우엥 - 패배의 눈물

박원순은 이겼어도 역시 현실은 시궁창.

내 개인적은 싸움은 졌다.

모르겠다. 과정은 어쨌든, "댁은 그 동안 고생하셨습니다. 다음에 다시 일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얻어냈으니 절반의 승리인가. 하지만 이건 그냥 표면적인 개뻥일 뿐이고 진실은 세상사에 닳고 닳은 능구렁이 세 마리에게 다구리당했다는 거지. 아침 10시 반부터 힘을 뺐더니 저녁 7시쯤 됐더니 졸려 죽을 지경.

저녁에 이 업계 친구를 만나 한 달 동안 이 회사에서 있었던 이런 저런 일을 몹시 축약해서 들려줬더니 친구 왈, "야, 듣기만 해도 지친다." 내가 엄청 불쌍했던지 일단 올해는 쉬라고, 내년에 적극적으로 일을 구해주겠단다. 흑흑 말만으로도 고마워. ㅜㅜㅜㅜ


지난해는 "헛꿈의 시간"이었다고 정의내렸다면 올해는 "진상 팀원들의 해"라고 정의할 수 있을 듯. 올해 일했던 세 군데의 회사에 다 한 명씩 진상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진상들의 강도가 점점 세졌어;;;;;;;

첫 번째 진상.
그녀는 일을 못 했지. 하지만 지가 못 하는 줄 모르고 잘난 척 나댔어. 결국 팀장과 불화가 일어났고 그녀는 나갔지. 그 뒤 나는 평화로웠어.

두 번째 진상.
그는 말하는 것과 술을 좋아했지. 일할 때도 술을 마셔서 고역이었어. 거기다 이해력과 판단력이 달려서 결국 많은 부분을 내가 짊어지고 가야 했지. 하지만 그래도 사람은 착했어. 무슨 일이 잘못되거나 잘 안 풀린다고 내 탓을 하거나 딴말을 하거나 그런 일은 없었어.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인간과 다시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세 번째 진상.
이 새끼는 일을 안 하지, 아예. 일을 안 하고 할 생각도 없고 빈둥빈둥 놀면서 잘난 척을 더럽게 해 대. 그걸로 끝나면 좋은데 입만 열면 개뻥, 사람들 사이 이간질 시키는 게 취미. 삼자대면을 가장 무서워한다는 선배 c의 전언. 여기저기 큰소리 뻥뻥 쳐대고 다니니 팀원들은 그거 뒷수습하느라 죽을 맛. 사고 친 뒤 결코 책임지는 일 없지.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병신같은 새끼. 어떻게 이런 새끼가 아직도 이 바닥에 붙어서 돈을 벌 수 있는지 그게 밋흐테리.

네 번째 진상 만나기가 무서워 올해 남은 날들은 일 안 하고 쉬고 싶은 마음 굴뚝. 이 일 끝났어도 다른 일은 아직 하나 남아있기도 하고.


몸도 몸이지만, 마음이 많이 지쳤다. 다행인건 상처입은 건 없다는 사실.
뭐 그렇다고.




꺄악~ 승리의 함성

17년 만에 한나라당 치하에서 벗어나 해방의 감격에 헤어나오고 있지 못하는 서울시민입니다. ㄳㄳ

박원순이 서울 시장이 됐다. 그것도 7%p차. 제법 큰 차이다.

다른 곳이 다 깨졌다는 게 조금 거시기하긴 하지만, 이게 더 나은지도 모른다. 민주당은 다 깨진 반면 야권 후보는 당선이 됐으니, 내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계속 몽니를 부리기는 쉽지 않을 게다. 음화화화화화. 한나라당 만큼이나 민주당도 망하거나 바뀌어야 한다고 믿는 나에게는 그닥 나쁘지는 않은 결과다. 다만 한나라당 치하에서 몇 년을 더 보내게 된 지역 주민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건넨다.

9월 중순부터 미치게 바빠서 거기다 나는 계획성이라고는 개뿔도 없는 게으른 인간이라, 사실 서울 재보궐 선거에 거의 관심을 갖지 못했다. 신문 기사 하나 제대로 못 챙겨봤으니 말해 뭘해. 아는 누군가는 박원순 선거 유세 현장에 놀러가고 아는 누군가는 야권단일후보 경선에 참여했고, 아는 누군가는 나경원 남편의 병역 비리를 밝혀내 82쿡에서 스타가 되는 등 내 주변 사람들은 이 선거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지만 나는 여기서 왕따였긔. 어차피 잘릴 일 차라리 시작도 안 했으면 선거 기간이나 마음껏 즐겼을 것을, 내 팔자가 그렇지 뭐. 그래도 이겼으니 됐다. 이제 서울 시장과 시정을 미워하며 살지 않아도 돼. 흑흑. 아이 좋아.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지금,
나는 내일 오전 (새벽이니 오늘 아침이려나) 개인적인 싸움 하나를 앞두고 있다. 워낙 소심하고 겁많은 성격인지라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세상사 다 그런거지라든가 좋은게 좋은거지라고 생각하며 굳이 문제 일으키지 않고 살아오길 10여년. 처음으로 일을 시끄럽게 만들러 간다.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고, 차라리 일 벌이지 말걸 후회하며 돌아올 가능성 높고, 설사 원하는 걸 얻어낸다 하더라도 상처뿐인 승리일 자리. 하지만 그래도 간다. 오늘 밤, 지금 이 시간처럼 내일도 나름 후련한, 승리의 기쁨을 안고 오고 싶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을 안고 남은 일을 빡세개 해야 된다는 사실. 역시 언제나 현실은 시궁창.

현실은 시궁창이라도 박원순 시장 당선을 축하하며,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지치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마지막으로,
서울 시민의 시민의식을 일깨워준 가카와 깨어난 시민의식을 실천으로 옮길 기회를 준 다섯살 훈이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한다.

역시 가카는 요정이었어.



그냥 잡담 일상

1. 일이 쉽지 않다. 아주 여러가지로. 능력의 한계를 느낀다.

2. 일한지 한 달 밖에 안 됐는데 반 년은 된 듯한 느낌이다. 그런데도 아직 견디고 있다는 게 신기하긴 하다. 책임질 게 있어서 그런가보다 싶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 힘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3. 나는 전형적인 트리플 A형이다. 화를 낸 적이 거의 없는데 성격이 좋아서가 아니라 소심해서다. 화를 낸 뒤 벌어질 뒷일들이 걱정이 된다. 싸움에서 이길 자신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아예 안 싸우는 게 싸워서 지는 것보다 덜 쪽팔릴 것 같다. 싸우게 되면 일단 앞뒤 안 가리고 내가 잘났다고 소리소리 질러야 할 텐데 나는 그게 안 된다. 상대방의 잘못이 70이라고 해도, 내 잘못 30이 마음에 걸려서 마음 놓고 화를 못 낸다. 그래서 싸움을 피하는 편이고, 왠만하면 좋게좋게 설득하고 합의해서 일을 풀어나가려고 하는 편이다.

이 점은 아주 오랜 컴플렉스였고 지금도 그렇다. 다만 지금은 그냥 포기했을 뿐. 포기하면 편해, 아무렴.

언젠가 두어번 싸우려고 목소리를 높인 적이 있었는데 실패로 끝났다. 상대방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어거지로 해대는데 나는 그게 안 되고, 논리로 풀 수가 없으니 싸울 수가 없더라. 앞의 포스팅에서도 몇 번 말한 적 있지 않나? 나 병신이라니까. ㅡㅜ

그런데 오늘, 후배에게서 내 그런 점이 좋아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싸운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니, 상대방을 좋게좋게 달래고 설득해서 일을 잘 해결하려고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다 싶었댄다. 조금 기뻤다.

하지만 이건 내가 성격이 좋아서가 아니라니까. 그냥 화를 못 내는 병신이라서야. ㅡㅜ 하지만 스트레스 받는다고 고쳐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렇게 살아야 할 것 같다. 다만 이런 모습이 사람들에게 만만하게 생각되고 무시당하지 않을까 좀 걱정했는데 그건 아닌 것도 같아 좀 다행이다.

그러고보니, 올해 함께 일을 한 파트너들에게 들었던 말 중 하나가 "보기보다 고집 세네. 성격 있어." 였다. 하지만 이게 내가 정말 고집이 세서 그런건지 아니면 첨 봤을 때 하도 병신같아 보였기 때문인지는 아직도 미스테리다. 물론 굳이 해답을 얻을 생각도 없다. 아, 그러고보니 "보기와는 다르게 어쩌구" 하는 말도 들었지. 도대체 보기에 어떻길래? ㅡㅡ 이 얘기를 들은 친구 한 명은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다고 뒤집어졌는데 난 여전히 모르겠다. 어쨌거나 딱히 좋은 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아무렴 어때. 무슨 뜻인지 안다고 내가 변할 것도 아닌데.

4. 며칠 전에는 장염에 걸려 고생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안 좋아서 좀 늦게 출근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결심하는 순간 화장실로 직행, 두어 시간 동안 십 몇 번은 간 것 같다. 1년 동안 낼 오물세 다 내는 줄 알았다. 다행히 워낙 건강 체질이라 약 한 번 먹으니 설사는 그치고 하루 지나니 다 나았다. (아침에 장염 걸려 고생한 주제에 저녁에는 피자 뜯어 먹었다.)

회사 사람들은 스트레스 때문이 틀림없다고 그랬는데 (현재 회사에 스트레스로 담 걸린 인간 하나, 스트레스로 어깨 결림 온 인간 하나, 스트레스로 감기 안 낫는 인간 한 명이 있다. 그리고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밥 먹을 때마다 체하고 있다. 그만큼 스트레스가 심하고 매일같이 긴장감이 흐르는 사무실이다.) 친구 조모양은 "네가 스트레스성 장염에 걸린다는 건 상상이 안 간다. 그냥 많이 처먹은 거겠지."라고 진단했다. 나 역시 동감. 스트레스에 매우 강한 체질이라 단 한 번도 스트레스 때문에 고생한 적이 없다. 아, 딱 한 번, 고3때 대학 줄줄이 떨어지고 난 뒤에 사흘인가 잠을 제대로 못 잔 적은 있었구나. 하지만 그 얘기를 전해 들은 아빠가 괜찮다고 위로해주신 바로 그날부터 잘만 퍼져 잤다. 고3때였나 재수할 때였나 수능 전날 TV를 보며 룰루랄라 놀고 있다가 큰언니한테 긴장 좀 하라고, 무슨 수험생이 저렇게 속이 편하냐고 욕먹은 적도 있다. (그리고 언니의 우려대로 시험 망침. 하지만 이건 긴장을 안 한 탓보다는 공부를 안 한 탓이겠지.)

5. 스트레스에 강한 성격이어설까. 지금 일하는 사무실은 매일같이 크고 작은 사고가 터지는 곳. 다른 곳에서라면 상상도 못할 사고들이 줄줄이 터진다. 하지만 나와 내 후배들은 매일 농담 따먹기를 하며 하하호호 웃으며 일하고 있다. 그 사고들이 후배들 탓도 아닌데다 매일 날밤까며 열심히 일하는 애들에게 날 선 분위기로 숨막히게 만들고 싶지 않다. 언젠가는 후배 몇 명이 "선배님, 이거 굉장히 큰 사고 아닌가요? 그런데 사무실 분위기가 너무 화기애애해서 놀랐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누군가가 보면 한심해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이게 맞다고 믿는다. 경직되어 있다고 일을 더 잘 하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숨막히고 스트레스 가득한 무거운 분위기를 풀어줄 수 있는 건 농담 밖에 없다. 웃으면서 일을 하기에 그나마 이만큼 버틸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6. 하지만 사실 슬슬 한계가 오고 있긴 하다. 내가 언제까지 농담하고 웃으며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 달째 마음 놓고 쉰 날이 하루도 되지 않는다. 지금도 새벽 두시 반인데 일하고 있잖아.

사실 일만 빡세면 그나마 다행일텐데 사무실에는 폭탄 같은 인간이 두어명 걸어다니고 있고(사고 메이커들), 지 좋을 대로만 하려는 인간 역시 두어명 거닐고 있고, 사장과 팀장은 앞뒤 가리지 않고 빨리빨리 하라고 사람들을 다그치고 있고, 내 후배들도 슬슬 지쳐가고 있고, 그런 주제에들 편을 갈라 싸우고 있는 것들이 있고,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인간들이 없고, 그렇다면 내가 전권을 쥐고 끌고 가야 하는데 그럴 능력도 자신도 없고, 이 상황이 개선될 길도 보이지 않고.


그런데도 아직 버티고 있고, 거기다 버틸 힘이 조금은 더 남아 있다는 게 스스로 놀랍다.

친구 은모양과 며칠 전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다.

"언니, 나 너무 한심하지. 해병대 캠프 같은데라도 가서 정신 좀 차리고 올까?"
"관 둬. 우린 게으르고 불성실한 주제에 지구력은 강해서 그런데 가면 또 그런데로 버텨. 깨달음 따위 없어."
"아, 그렇구나."


그랬구나. 지구력이 강한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구나.





일 싫어 돈 좋아 일상

1.
100만년 만에 포스팅을 하는 이유,

뻔한 거지 뭐. 일하는 중이다. 그리고 일하기 싫어서 도피 중이다.


2.
8월은 위기의 달이었다. 정말로 이 직업 때려치워야 하나 생각하며, 비슷한 처지에 있는 동료들과 "난 식당 아줌마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따위의 말을 나누었다. 벗들을 만났을 때에도 우울한 오오라를 잔뜩 풍겨댔는데, 이 자리를 빌어 용서를 구한다. 왠만하면 티를 잘 안 내려고 하는 편인데, 8월에는 참 암울하긴 암울했다.


3.
언제나 상황은 급작스럽게 변한다.
8월 말부터 일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론 그닥 좋은 일자리들은 아니다. 당연하지. 요즘 이 업계 상황이 워낙 안 좋은데다 나는 나이만 많고 경력은 허섭한 인간인데 이런 애한테 좋은 일이 왜 들어오겠니.

어쨌거나 곰곰히 따져보니 8월 말부터 9월 중순까지 불과 보름 정도의 기간 동안, 들어온 일자리가 모두 5개 정도. 지난 넉 달 동안에는 한 군데도 없었는데. 장난하니? 어쨌거나 5개 중에 세 개는 쳐 내고 두 개를 하기로 한 상태다.


4.
일하게 된 건 참 좋은데 문제는 일자리가 한꺼번에 들어오다보니 현재 일이 밀린 상태라는 거다. 출근 첫날부터 회사에서 밤샘 중. 밤은 새고 있는데 일은 하나도 안 하고 있음. 손에 안 잡혀. 넘넘 하기 싫어. 흑흑, 뭘 믿고 이러는지. 내일 아침까지 끝내야 하는데.


5.
내일 아침까지 페이퍼 하나 끝내고, 오전에 A회사 회의 하고, 일 배분하고, 점심 때 B회사 회의하고 페이퍼 하나 작성하고,
금요일에는 오전에는 A회사 일하고 오후는 B회사 사람들 만나 인사해야 하고
주말에는 페이퍼 작성. 그리고 계속 A회사 일 체크.
뭐 이리 시작하자마자 빡세냐. 젠장.


6.
이렇게 바쁘면 떼돈을 벌겠군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항상 말하듯이 난 싸구려 인력이라니까. 기냥 급한 불은 끈 상태고 입에 풀칠은 할 수 있게 된 상태다. 하지만 이게 어디야.


7.
이상하게 항상 가을과 겨울에는 일을 하고 있고 여름에는 백수다. 가을에 백수였던 적은 거의 없었던 듯. 덕분에 백수여도 놀러를 못 간다. 경주를 가고 싶어한지 몇 년 됐는데, 폭염이 쏟아지거나 장대비가 내려꽂히는 7, 8월에 경주는 무슨 얼어죽을, 아니 쪄죽을 경주. 고궁도 가고 싶었지만 더워서 안 갔고 서울시내 돌아다니고 싶었지만 더워서 관뒀고, 9월 들어오면서 선선한 바람이 불길래 여기저기 산책이나 다녀볼까 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런 일크리.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가을과 겨울인데, 어차피 곧잘 백수되는 팔자, 이 시기에 백수 한 번 돼 봤음 좋겠다.


8.
올해 초, 갑작스레 일을 하게 됐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칭구가 말했다. "언니, 나 아는 애가 거기서 일했는데 거기 가면 개고생할 거라고 그러는데?"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개고생을 하더라고 돈없이 굶는 것보다 돈받고 구르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냥 갔다. 갔더니, 그 전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갔을 때는 나를 포함, 팀원이 모두 바뀌었기 때문에 나는 별 어려움없이 일했다. 프로젝트 기간 자체가 짧아서 그게 좀 아쉬웠지, 지금까지 내가 했던 일 중에 일 대비 돈은 많이 주고 스트레스나 부담감도 없이 일했다. 함께 일한 사람들과도 나름 잘 맞았다.

현재 일하고 있는 A회사는 내가 오기 바로 전까지 엄청난 풍파를 겪었던 듯 하다. 오죽하면 나한테 일하자고 연락을 했겠니. 그런데 어쨌거나 역시 내가 오면서 팀원이 대거 교체된 상태다. 운이 좋다면, 올초의 그곳처럼 편하게 갈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난 항상 운이 나빴지. 편하다는 일자리도 나만 가면 빡세지고, 잘 나가던 회사도 나만 가면 기울었어. 난 안 될거야 아마.


9.
일자리를 구했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잘해야 한다는 거다. 당연한 얘기지만. 정신차리고 일해야겠는데, 아우, 일이 손에 안 잡혀. 이게 꼭 내 탓만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해야 할 일을 제 시간에 끝내지 못한다면 그건 내 탓인거지. 이제 착실하게 일해야겠다.


내가 오세훈을 오해했다. 일상

http://media.daum.net/cplist/view.html?cateid=1002&cpid=11&newsid=20110821223909311&p=khan

우리 훈이 많이 힘들었어요? 우쭈쭈~

주민투표 사흘 전, 다섯 살 훈이가 힘들어 죽겠다고 울며 무릎을 꿇고 주민투표가 제뜻대로 나오지 않을 경우 시장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며칠 전, 오세훈이 2012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나는 동거인과 함께 역시 시장직 내놓겠다는 말은 안 한다며, 하긴 이렇게 불확실한 (또는 패색이 짙은) 주민투표 결과에 그렇게까지 하겠냐는 대화를 주고 받았는데, 역시 우리 훈이는 통 큰 남자였다. 나처럼 소인배가 아냐. 감격의 눈물이 주루룩...ㅜㅜㅜㅜㅜ.... 하긴 그 동안 얼마나 힘들었겠나. 간신히 0.2% 차이로, 그것도 서울 25개구 중 강남쪽 3개구의 지지로 간신히 재선에는 성공했는데, 서울시의회하고도 입장이 달라, 나머지 지자체 구청장들하고도 안 맞아, 서울 시민들도 딱히 예뻐해주는 것 같지 않아, 디자인 서울 외치면서 별지랄을 다 했는데 성과는 없어, 그 상황에 수해까지 터져... 시장직 그만두고 싶을 만도 하다. 한 6~7년 전만 해도 제법 훈남이었던 그가 후덕해진 거 봐라. 그렇다면 나는 훈이를 위해서, 그를 보내줄 용의가 충분히 있다. 우리는 지친 훈이를 보내주고 새로운 시장을 맞이해야 한다. 아이 좋아.


덧1. 서울시민인 나는 투표 안 한다. '나쁜 투표 보이콧'의 의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투표장 간다해도 내가 찍을 답안이 없어;;; 1번과 2번 안 모두 서울시 교육청에서 내놓은 방안과는 다르다. 내 의사를 밝힐 답안이 없는 투표장에 뭐하러 감?

덧2. 버스 앞에 주민투표일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붙어져 있는 걸 봤을 때 짜증은 났지만 그러려니 했다. 사방팔방 붙어있는 플래카드도 신경질 나지만 역시 그러려니 했다. 그보다도 주민투표 참여 찬반을 주장하는 플래카드들은 각 정당 및 단체에서 지네 돈 들여 한 거니까 뭐 그렇다고 쳐. 그런데 우리집 앞에 투표장소를 알리는 플래카드를 봤을 때는 짜증이 치솟았다. 난 지난 지자체 선거, 그 전 총선 심지어 대선 때도 이렇게 친절하게 투표 장소와 날짜를 알려주는 플래카드들을 본 기억이 없어. 항상 투표 며칠 전 선관위에서 오는 팜플렛 받아본 뒤 투표 장소 찾곤 했다고. 도대체 어거지로 진행하는 주민투표를 위해 돈을 얼마나 써 제끼는거야???? 투표 지거나 법정에서 무효화 처리 되면 여기에 든 비용 다 네 돈으로 처리해라.

덧3.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지 임기 안 끝난 상태에서 다음 선거 나가려는 짓거리 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지자체 선거가 2010년 6월이었고 대선이 2012년 12월인데, 5년 임기에서 꼴랑 반 채우고 떠날 거면 그 자리 왜 차지하고 앉았는데? 지자체 행정 잘 좀 부탁한다고 뽑아놓은 서민은 병신이냐?

덧4. 연합뉴스에서 "적극적으로 투표하겠다는 층이 38%"라는 여론 조사 결과에 대한 기사를 냈는데, 서울시민 700명 대상에 응답률 12%다. 장난하냐? 여론 조사에 대해 개뿔도 모르는 나도 이건 아니라는 거 안다. 급한 마음은 알겠는데 좀 비웃음 살 짓은 되도록 하지 말아봐. 오세훈 눈물+무릎꿇기 크리도 그렇고 이 여론조사도 그렇고 읽는 동안 손발 퇴갤함





힘겨운 독서 - 저우언라이 평전

저우언라이 평전 / 리핑 지음 허유영 옮김 / 한얼미디어




저우언라이 평전을 읽다.

원래는 저우언라이라든가 마오쩌둥의 표기가 맞겠지만 기냥 내 편의대로 주은래, 모택동이라 쓴다. 어쨌거나 주은래 평전을 읽다. 몹시, 매우, 이빠이 힘겹게.

1.
중국 혁명가 1세대 중에서 내가 가장 호감을 가진 이는 주은래였다. 이유는 모른다. 중국 혁명에 관련해 읽은 책이 기껏해야 '중국의 붉은 별'밖에 없는데 아는 게 뭐가 있겠나. 아마도 그의 온화한 성품과 넓은 포용력, 중용을 지키며 모든 갈등의 중재자적인 역할을 했던 것 등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중국의 붉은 별'에서 에드가 스노우가 주은래를 처음 만났을 때 그에 대해 '호리호리한 몸매'라고 묘사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기억속에선 잊혀졌지만 무의식의 영역엔 새겨져 있었던 게지. 나란 인간 이런 인간. 괜찮아, 하루이틀 일인가 뭐.


2.
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모택동의 충실한 동지, 영원한 2인자, 덕과 인을 갖춘 총리... 주은래 하면 따라붙는 수식어들이다. 강소 성(장쑤 성)의 관료 집안에서 태어나 소년 시절 고국의 비참한 현실에 눈뜬 그는, 평화롭고 부강한 중국을 만들기 위해 공산주의에 투신한다. 1922년 프랑스에서 "중국공산주의청년당"에 가입한 이후, 생을 마감한 1976년까지 그는 항상 중국 공산당의 최고위원의 자리에서, 중국의 평화와 인민의 삶을 위해 혼신을  했다. 48년간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27년간 총리라는 기록은 세계 최장이라고 하는데, 이 경력이 주은래라는 인물을 잘 말해주지 않나 싶다.

중국 공산당은 창립 이후 수많은 당내 파벌 싸움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많은 이들이 실각하거나 축출당했다. 모택동도 1935년 준의회의(쭌이회의) 이전까지는 지방 지부의 한 멤버에 불과했으며 한때 정치국에서 추방당하기도 했고, 등소평은 1966년 문화대혁명 때 실각해 공장 노동자로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주은래는 예외였다. 준의회의 이전 실권자였던 이립삼(리리싼), 왕명(왕밍), 장국도(장궈타오)등이 세력을 잃었을 때도, 문화대혁명 때 유소기(류사오치), 등소평, 팽덕회(펑더화이) 등이 축출당했을 때도 주은래는 항상 자신의 위치를 지켰다. 이리저리 잘 붙는 박쥐같은 새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주은래가 공산당 안에서 했던 역할과 그의 성향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할 것이다. 에드가 스노우가 쓴 '중국의 붉은 별' 부록으로 실린 인물 약전표의 한 구절을 보면,


"한 쪽이 다른 쪽을 폭력으로 제압함으로써만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철저한 항쟁보다는 여러 세력들의 주요한 화해자의, 또 그들이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는 조정자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아마도 주은래가 모든 파벌과의 관계를 광범하게 가질만큼 넓은 도량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주은래는 항상 대립보다는 타협을, 갈등보다는 협력을, 극단적인 주장보다는 중도적인 입장을 택하는 사람이었다. "같은 것을 부각시키고 다른 것은 인정한다"는 그의 주장은, 외교 정책 뿐 아니라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테마였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박고 낙보 등이 모택동을 따돌리려고 할 때도 모택동 주덕과 최종적으로 분열되는 것을 막으려 애썼고, 강청 4인방이 등소평을 공격했을 때도 그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실사구시를 중시했던 그는, 옛것은 무조건 나쁘다는 주장에도 반대했고, 지식인 등은 모두 부르주아 계급이라는 비판에는 '지식 노동자'라는 단어로 이들을 보호했다. 이런 주은래의 특징이 외교 분야에서 가장 두각을 보인 것은 당연한 일일 게다. 국공합작이나 중미 회담, 반둥 회의 등 주요한 외교 협상에는 언제나 주은래가 있었다. 쓸데없는 대립과 갈등보다는 서로 인정하고 평화롭게 사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 그이니만큼, 한반도와 압록강 북 쪽의 옛 고구려 땅이, 한국에 속한다는 것을 인정하며, 과거 중국의 침략과 잘못된 역사 기록을 사과한 것도 일면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1인자의 자리에 앉을 기회가 여러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항상 2인자에 위치했던 것처럼, 주은래에게는 중국 땅을 한 치 더 넓히는 것보다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평화롭게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사는 것이 훨씬 중요했을 것이다. 그의 일생에서는 전체주의적이거나 교조주의적인 편협한 시각을 찾아볼 수 없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주은래가 지금 만약 살아있다면 티벳이나 신장 등 중국내 소수민족과 관련된 문제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동북아공정 등의 문제로 옥신각신하는 중국과 한국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해 줄까. 세월이 흐르고 상황이 변하면 사람도 변하는 거겠지만, 주은래가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지 않고 보신주의에 빠져 대세를 따랐다는 비판도 받는 듯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최악의 사태(물리적인 충돌)을 피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애썼던 이 온화한 혁명가라면 지금의 중국과는 다른 방법을 찾지 않았을까.



3.
이제 이 책에 대해 얘기해보자. 주은래에 대한 아주 가벼운 호감과 중국 현대사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으로 집어 든 이 책. 만약 나와 비슷한 마음을 가진 이가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읽지 말라고. 600여쪽에 이르는...얇은 책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분량 이외의 문제로 정말 힘들게 읽은 책이었다.

저우언라이, 덩잉차오, 리리싼 또는 난창, 허베이, 산시 등 지명과 인명의 표기가 낯설어 초반부에서 이건 누구고 저건 어딘지 한참을 헤맸던 건 내 무식 때문이니 어쩔 수 없다고 치자. (한 동안 지리부도와 중국의 붉은 별 인물 약전표를 함께 펴 들고 읽어야했다. 흑흑. 난 아직도 장궈룽보다는 장국영이란 표기가 훨씬 익숙하고 편한 늙은이라능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먼저, 가장 불만스러운 것은 이 책의 시각이다. 이 책의 저자는 리핑. 책날개 저자 약력에는 '중국 공산당 중앙문헌연구실 연구원, 실무위원 겸 저우언라이 연구팀 팀장, 중국 공산당 중앙당사학회 상무이사, 베이징 대학 겸임교수'라고 나와 있으며, 이 책은 1991년 중국 공산당 중앙문헌연구실의 지시에 따라 집필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 주은래와 모택동, 등소평, 그리고 중국 공산당의 정책 등을 비판하는 부분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즉 역사와 인물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각이 결여되어 있는 반면,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 쓴 '교과서적인 책'이라는 느낌을 준다. 예를 들어, 모택동 최대의 오점으로 얘기되는 문화대혁명에 대해서도, 이 사건이 모택동이 아닌 임표(린뱌오)와 강청(장칭) 등의 사악한 음모와 책동으로 일어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게 현재 중국 공산당의 공시적인 입장이라고 한다. 문화대혁명 자체는 비판해야 하지만 모택동을 부정하면 중국 공산당을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란다.) 문화대혁명은, 당시 중소 관계가 악화되고 후르시초프가 스탈린 비판 작업을 개시하는 것에 대해 불안함을 느낀 모택동이 당내 수정주의자들을 척결하는 동시에, 대약진 운동의 실패로 약화되어 있는 자신의 입지를 다시 다지기 위해 벌인 일이라는 것이 아마도 현재의 주된 시각일 것이다. 문화대혁명이 전개되면서 생긴 모든 사건들, 임표의 반란 계획이라든지 강청의 세력다툼 등까지 모두 모택동 탓으로 돌릴 순 없을지 몰라도 모택동이 문화대혁명의 혼란과 비극에 대해 책임을 면제받을 순 없다. 동시에, 모택동의 당시 숙청 대상이었던 유소기(유사오치)와 등소평(덩샤오핑)를 무조건적인 피해자로 몰아갈 수도 없을 것이다. 이들은 임표나 강청의 권력욕 때문에 실권당했다기보다, 모택동과의 권력 쟁탈전에서 패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 부분에 대해서, "문화대혁명에 대해 정말 아는 게 없구료. 그건 이런 게 아니라 저런 거요."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그게 바로 이 책의 문제점이다. 나름 열심히 읽었는데 문화대혁명에 대해서 약간의 지식도 얻지 못했다. 임표, 강청 나쁜 넘 이거 밖에는. 그나마 위에 쓴 것도 인터넷을 뒤져 얻은 아주 약간의 앝은 지식이다.

모택동이 마침내 중국 공산당의 전권을 쥐게 되는 준의회의(와 준의회의까지 이르는 당내 주도권 다툼의 과정)에 대해서도, 이 책보다는 차라리 '중국의 붉은 별' 인물 약전표와 주(註)가 더 내용이 알차다.

덧붙여, 준의회의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고 중국 공산당이 절멸 위기에서 벗어나 대반전을 꾀하는데 성공했던 대장정에 대해서도 가볍게 얘기하고 넘어가는 반면, 문혁에 대해서는 무려 8장이나 할애하고 있는 걸 볼 때, 등소평을 매우 의식하고 쓴 책이 아닌가 싶은 의구심도 든다.

평전을 읽을 때는 주인공이 살았던 일생과 그를 둘러쌌던 시대적 상황과 맥락, 그 둘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와 그 한계까지 알고 싶어 읽는 것일 게다. 그런데 공산당과 주은래 모택동 등소평 이들이 신도 아닐진대 아무런 오류도 찾아볼 수 없다는 건 말이 안 될 뿐더러 읽는 의미조차 없다. 서문 읽을 때부터 좀 불안하긴 했는데 "주(周)비어천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 하다. (여기에 모(毛)비어천가와 등(鄧)비어천가까지...)

주은래가 이립삼을 지지했던 건 마음 속에 불만은 있지만 당내 평화를 위해서였고, 문화대혁명 때 모택동에게 크게 저항하지 않았던 건 자기라도 살아남아서 어떻게든 문혁의 피해를 줄여보기 위해서였고 뭐 주구장창 이런 식. (아, 물론 문혁 때는 그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다른 시각도 좀 있는 것 같지만.) 당시 상황 때문에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거고, 나쁜 넘들한테 공격을 당해서 그런 거지 주은래 자체에는 아무런 오류도 잘못도 없단다. 주은래를 마구 욕해달라는 건 아니지만 주은래의 행동과 정책에 대해 지금 현재의 시각에서 볼 때 발견되는 실수나 오판, 한계 등은 당연히 나올 수 있는 것들 아녀? 나는 주은래 평전을 읽으려고 한 거지 주은래 위인전을 읽으려고 한 게 아니라긔.

두 번째, 주은래가 '무엇'을 했는지는 말해도 '어떻게'했는지는 별로 말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중국 외교와 관련하여 주은래는 몇 년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나고 같은 해 몇 월에는 누구를 만나고 그 다음에는 누구를 만나서 이런 연설을 하고.....(중략) ..... 세계에서의 중국의 위상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 참 잘했어효 도장 쾅." 주은래가 성사시킨 중미 회담(1972년 닉슨이 중국을 방문했던)에 대해서도,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것을 성사시키기 위해 주은래가 어떤 노력과 역할을 했는지는 매우 기본적인 내용만을 서술하고 있다.


"1970년대 초, 저우언라이는 국제정세의 변화와 닉슨 미국 대통령의 대중정책 전환에 대응해 미중관계의 전략을 수정하였으며, 1971년에는 그 유명한 핑퐁 외교가 시작되었다. 1971년 4월 14일, 저우언라이가 중국을 방문한 미국 탁구단을 접견하고, 뒤이어 닉슨의 중국 방문이 이루어졌다. 저우언라이는 닉슨과 회담을 통해 상하이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평과공존 5개 원칙에 입각해 양국 관계를 처리할 것이라고 천명했는데, 이는 미중관계 정상화의 물꼬를 튼 중대한 사건이었다.  p.423"


이런 식이다. 어쩌라고????? 국민당과의 내전 때 미국이 장개석을 지원했고 이후 냉전 체제가 시작됐으니 당연히 중국과 미국이 사이가 안 좋겠지. 그러다 서로 만나서 회담도 하고 했으니 당연히 '중대한 사건'이겠지.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이보다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싶어서다. 예를 들어, 미국과 대립하던 중국이 왜 입장을 바꿔 미국과 수교하게 되었는지, 이것이 중국 공산당의 향후 외교 방향에 대해 어떤 점을 시사하고 있는지, 주은래가 이것을 주도한 이유 또는 이것을 중요하게 생각한 이유는 무엇이며(혹시 당내 반대의 목소리는 없었는지, 있었다면 그들은 왜 반대했으며 주은래는 그들을 어떻게 설득시켰는지) 이것이 중국의 정치 외교와 국제 정세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등 말이다.

그나마 이건 양반일까. 이런 구절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띤다.


"저우언라이는 4인방과의 투쟁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4인방이 '수호전'을 비난한 목적은 조개를 떠받들고 송강을 '투항파'라고 비판하기 위함이었다. 그러자 저우언라이는 주변 사람들에게 '루쉰 전집' 가운데 '진성탄을 평가하며'라는 글과 '수호전'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고, 또 비서에게 시켜 '당서'가운데 '무측천전'을 가져오도록 했다. - p.620"


다음 문장은 다른 내용으로 넘어간다. 이 책들을 가져오게 해서 뭘 어쨌는지, 사설을 썼는지 연설문을 썼는지 아니면 가져오게 한 책들이 뭘 의미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 가져오라고 해서 그냥 열심히 읽은 모양이다. 이때는 병상이라 몸도 아파 죽겠는데 흑흑

그 반면에, 모택동이 강청을 얼마나 제지하려 애썼는지에 대해서는, 참 자상하게도 당시의 대화까지 재구성해서 실어놨다. 이거 등소평 읽으라고 쓴 책 맞지?????


세 번째, 주은래의 행적이 내가 기대한 것과는 다른 식으로 정리되어 있다. 시간 순으로 또는 사건 순으로 차곡 차곡 설명하는 게 아니라, "1960년대 경제 정책 면에서의 활동", "1960년대의 외교 무대에서의 활동" 이런 식으로 나열되어 있어서, 가뜩이나 중국 현대사에 대해 아는 것 없는 나는 이게 뭔 소리인지 엄청 헷갈렸다. 


네 번째. 중국 근현대사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나같은 인간에게는 매우 불친절한 책이다. 예를 들어, 문화대혁명을 주도한 4인방 중 한 명인 강청이 모택동의 세 번째 아내라는 사실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엄청나게 중요한 사실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강청은 1966(문화대혁명이 시작된 해)년 까지는 정치 무대에 거의 등장하지 않다가, 문화대혁명 때 모택동의 사상을 정리하고 선전하며 정치 무대에서 상당한 세력을 가지게 됐고, 따라서 문혁 당시 강청이 마오주의의 화신과 같은 역할을 한 지라 이후 모택동이 강청을 못마땅하게 여김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내칠 수 없었다고 한다. 이 정도 되면, 강청이 모택동의 부인이라는 점이 대수롭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문혁 때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4인방에 대해서도 아무 설명없이 곧장 '린뱌오 외 4인방'이란 식으로 얘기하고 있어서 이게 도대체 뭔 소린가 좀 헤맸다. 이런 부분이 꽤 된다. 아마 중국인이 중국인을 대상으로 쓴 책이므로, 이런 건 설명 안 해도 기본적으로 당연히 알겠거니-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무식한 한국인. 나 읽으라고 쓴 것도 아닌 책을 읽은 내가 문제? 그럼 팔지 말던가.


마지막으로 사소한 부분이지만, 중복되는 문장도 많고 (바로 같은 페이지에서 같은 문장이 반복되는 경우도 좀 있다.) 오타도 많고 오타로 인한 비문도 많다.



좋은 점을 꼽고 싶은데 솔직히 하나도 못 찾겠다. 다만, 내가 집중력과 독해력이 몹시 낮은 인간이라서 이 책을 제대로 못 읽었을 가능성은 높다. 어쨌거나 주은래나 중국 현대사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다면 모를까, 나처럼 무지한 상태에서 읽는다면 얻을 게 별로 없을 것 같다. (만약 잘 아는 사람이라면 굳이 이 책을 읽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어쩌면, 이 책이 의도한 바와 내가 원했던 것이 전혀 일치하지 못해 내가 이런 엄청난 실망감을 느끼는 걸 지도. 책을 살 때는 역시 잘 알아보고 사야 한다.

서문 읽고 한 번, 초반 100p 정도 읽었을 때 한 번, 중간 정도 읽었을 때 또 한 번, 그리고 거의 다 읽었을 때 한 번, "그만 읽을까"라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으나 순전히 오기로 끝까지 읽었다. 다 읽은 후에는 앞으로 이런 쓸데없는 오기는 부리지 말아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끗.



ps. 중요한 얘기를 빠뜨렸다. 주은래는 잘 생겼다.




비쥬얼 락 일상

유튜브에서 동영상 찾아보는 재미에 쪼매 빠졌다. 스트레칭을 하면서 티아라니 뭐니 좀 보다보니 갑자기 궁금해졌다. 한때 일본과 한국의 약간 명의 소녀떼를 열광시켰던 '비주얼 락' 애들 영상도 있나?

오호, 찾아보니 있었다. 역시 유튜브 >.
그랬다. 한때 일본 비주얼 락 좀 봤다. 진지하게 좋아한 건 아니었고, 뭐 95%는 화장발인 것 같지만 이쪽 애들이 늘씬하고 예쁘길래 재미삼아 여기저기 영상회 찾아다니고 비디오 테잎 좀 구해보고 그랬다.

맨 처음에 안 애들은 뭐 너무나도 당연히 Japan X. 하지만 좋아하진 않았다. 노래가 내 취향이 아냐. 그럼 다른 애들 노래는 내 취향이었을까효? 아뇨ㅡㅡ 라르크 앙 시엘의 몇 곡만 좀 좋아하고 다른 애들은 순전히 얼굴(과 몸매)만 빨았다.

개중 좀 좋아해볼까....하고 관심가졌던 첫 번째 아이들은 바로 페니실린. 하쿠에이가 생긴 건 좀 되니까효. 하지만 노래가....노래가....멜로디도 그렇지만 가사는 더욱..... 얼굴을 생각하며 참으려 했지만 '많이' 좋아하긴 도저히 무리데쓰.... 뭐 그래도 얼굴은 예쁘고 몸매도 훌륭하고 4차원 캐릭터도 귀여워서 나름 정을 줬더랜다.

그 다음 빨아볼까 생각했던 애들이, 휴 나도 참, 이 놈의 마이너 인생은 끝이 안 난다, 이 바닥에서도 지명도 낮았던 라퓨타. 지금 보니 다 화장발, 조명발인 거 티나지만 그때는 꽤나 예뻐보였던 기타리스트 코우이치와 베이시스트 준지. (보컬인 아키는... 어딘가 아줌마 삘... 하긴 얘네 노래도 뽕삘나니깐염. 비주얼 락 애들 대부분이 좀 뽕삘나긴 했지만.) 뭐 나는 "남자는 얼굴보다는 몸매!!!" 주의니까효. 어디선가 본 기사에서, 코우이치가 "아름다운 우리 선생님"이라고 하지 않으면 삐진다는 말을 듣고 "어머, 뭐 이런 공주병이 다 있어 오호호호호"하며 애정이 더 급진전됐으나... 라퓨타는 다른 밴드에 비해 자료 구하기가 참 힘들었습네다.... 보지 않으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애정하려 해도 소스가 있어야 하든 말든 하지. 게다가 얘네도 노래가....노래가...노래가.....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어쨌거나 일단은 음악을 하는 애들인데 노래가 정이 안 가다보니 아무리 얼빠짓을 하려 해도 한계가 있어서 어느 새부턴가 애정도 관심도 모두 식어버렸다.


지금은 다들 뭐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라퓨타는 2004년 해산, 코우이치는 그 후 솔로 활동을 하는 모양이긴 한데 잘은 모르겄다. (참고로 코우의 보컬은 몹시 평이 안 좋구려;;;;;;;)3.33g정도 남아있는 애정으로 라퓨타의 뮤직 비디오나 하나 올려봅니다효 호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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